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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양 교수의 인문학 산책 33] 미켈란젤로의 창조 이야기: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교황청 국제신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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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16 12:00
  • 수정 2022.11.16 12:02
  • 기자명 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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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중앙 천장화 중 여덟 번째 그림은 구약성경 창세기 6-8장에 나오는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다룬다.

인간의 교만과 탐욕, 그리고 그로 인한 분열의 상처와 폭력이 용서와 치유의 과정을 통해 정의 안에서 회복되지 않을 때 인간 세상에는 악의 실재가 만연하게 되고 마침내 혼란과 파멸의 위협이 찾아오게 된다.

창세기에서 인간의 죄악에 대한 벌로 찾아온 것은 대홍수로 인한 혼란이었고, 여기서 의롭고 흠 없는 사람 노아만이 방주를 만들어 가족들과 함께 살아남는다.

고대 근동의 문화와 세계관에서 물은 생명의 표상인 동시에, 정반대로 혼돈(chaos)과 죽음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늘날과 같이 물길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상태에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죽음을 가져오는 대홍수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경험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따라서 여기서의 물은 생명을 수호하고 유지시키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억압하고 앗아가는 표상으로서 드러난다.
 

창조의 두 번째 날에 물로 뒤덮인 세상이 정리되어 하늘이 열렸고(1,6-8 참조), 세 번째 날에는 하늘 아래 있는 물이 한곳으로 모여져 땅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거기에서 생명의 푸른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1,9-13 참조).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온 세상이 홍수로 인해 다시 물로 가득하게 된다는 것은 태초의 혼돈 상태로 회귀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고찰되어야 한다.

무질서로부터 세상이 창조되어 거기에 생명의 질서가 부여되었는데, 이제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다시 이 세상에 생명을 위협하는 무질서가 찾아오게 된 것이다.

대홍수는 모든 창조적 분류와 구분을 없애버리는 강력한 파괴적 힘으로 작용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모두 엄청난 물줄기에 묻혀버려 파괴되거나 혼란 속에 떠돌아다니게 된다.

이러한 메시지를 통하여 지금 내 자신의 삶을 반성해볼 수도 있다. 내 자신은 내 주변에 대해서 과연 얼마만큼이나 생명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있는가? 다양성은 거기에 내재된 창조적 에너지로 인해서 생명의 특징인 성장을 가능케 한다.

참다운 친교는 다양성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성난 파도와도 같은 획일성은 파괴적 힘으로 작용하여 생명의 아름다움을 파괴한다.

나는 혹시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이 성장하기보다는 억압의 상태를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현재의 내 자신은 파괴적인 힘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파괴적 힘이 아닌, 창조적인 생명의 힘을 전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 중앙 천장화 중 여덟 번째 그림에서는 대홍수의 재앙으로 인해 온 세상이 물로 차오르고 있는 상태에서, 이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표정과 몸짓들이 다양하게 묘사된다.

그림 중앙부에는 물에 떠 있는 노아의 방주를 향해서 안간힘을 다해 다가가려는 작은 조각배 하나가 있다. 그런데 그 작은 배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타 있다.

물에 빠진 채 필사적으로 그 배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배는 곧 뒤집힐 듯 왼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이다. 이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물에서부터 그 배 위로 올라오려는 한 사람을 저지하기 위해 그를 팔로 붙잡고 몽둥이로 후려친다.

그림 왼쪽에는 점점 차오르는 물을 피해 높은 지대로 도망쳐온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나무 위로 서둘러 올라가는 젊은 여인이 있고, 그 밑에서는 이를 부러운 듯 바라보면서 자기들도 따라 올라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한 쌍의 남녀가 있다.

그 바로 아래에는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절망하여 주저앉은 채 흐느끼는 모녀가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는 한 여인이 공포에 질려 우는 작은 아이를 안고서 달래려 한다. 그 여인의 왼편 다리에는 무서움에 떠는 큰 아이가 착 달라붙어 체념의 표정으로 울고 있다.

그리고 나무 오른편으로는 물을 피해 밑에서부터 막 올라오고 있는 또 한 쌍의 남녀가 있다. 비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여인은 남자의 등에 업힌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을 뒤쫓아 급히 차오르는 물을 근심스럽게 쳐다본다. 그 뒤로는 짐을 싸들고 계속해서 높은 곳으로 피난 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지어 있다.

이처럼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공포와 절망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기후 위기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지구 온난화는 과연 '천재(天災)'인가 아니면 '인재(人災)'인가? 하늘과 자연과 인간이 평화의 질서 안에 공존하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던 상태가 무너졌을 때, 인간과 세상은 서로 갈등을 빚게 된다.

현재의 기후 위기는 제어되지 않은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마구 수탈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지구적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조차도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기온이 올라가 극 지대와 고지대의 빙하가 녹으면 지구의 전체 해수면이 높아져 노아 시대의 대홍수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우려스러운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창세기의 메시지는 어찌도 그리 정확하게 오늘의 기후 위기 상황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마치 노아와도 같은 의인이 되어 오늘날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의 거센 물결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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