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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양 교수의 인문학 산책 31] 미켈란젤로의 창조 이야기: 죄와 벌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교황청 국제신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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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5 09:00
  • 기자명 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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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에서 충만함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던 인간에게 불현듯 죄의 유혹이 다가온다. 불행히도 인간은 그 유혹에 빠져 평화는 깨어지고, 이 세상에는 죄와 악의 실재가 생겨나게 된다.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중앙 천장화 중 여섯 번째 그림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원초적 죄와 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그림은 구약성경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내용을 잘 설명한다. 그림의 왼쪽 절반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뱀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짓는 장면을, 그리고 오른쪽 절반에서는 그 죄의 결과로 벌을 받아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나는 모습을 묘사한다.

사람에게 다가온 유혹자는 모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뱀이었다(1절 참조). 그런데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금지된 나무 열매를 먹으라고 유혹하는 뱀의 모습은 반인반수의 형태로 나타난다.

즉, 상체는 매우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손을 내밀고 있지만, 나무에 칭칭 감겨 있는 큰 구렁이 모양의 흉측한 하체는 숨기고 있다. 마치 사기꾼의 행태처럼, 유혹자는 결코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며, 그 유혹은 언제나 매력적인 것을 가장해 다가온다.

남자와 여자의 눈길은 유혹자의 상체를 향하고 있어 하체의 본모습은 바라볼 겨를이 없으며, 결국 그 어둠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렇게 아름다움과 황홀함을 가장해 인간에게 다가온 유혹은 두 가지였다(4-5절 참조).

첫째는 불사불멸성, 즉 결코 죽지 않는다는 유혹이었다. 둘째는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것, 즉 전지전능함에 대한 유혹이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인간이 신처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창조의 질서 안에서 살아야 하는데, 이를 깨뜨린 것은 금지된 선을 넘어서 신의 위치와 능력에 오르고자 하는 교만과 탐욕이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창세기 2,16-17 참조)를 먹으면 인간이 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황홀함을 제시하는 것이 유혹자의 계략이었다. 나아가, 인간으로 하여금 그러한 범죄가 파생시킬 끔찍한 결과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있는 유혹자의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범죄 후에 남자와 여자는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자 각기 서로에게 탓을 미루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인간이 범죄 후에 받게 되는 질문, “너 어디 있느냐?”(9절) 하는 물음은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물음이다. 독일의 성서신학자 칼 헤르만 쉘클레(Karl Hermann Schelkle, 1908-1988)는 이렇게 해석한다.

창조와 타락에 관한 이야기에서 만일 이 물음이 설화 형태로 인간이 처한 상황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 물음은 인간 각자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떤 처지에 있는가?’ 이는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인간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불확실함과 의심을 뿌리치지 못한 채 스스로 문제 삼아 온 인간 자신의 영원한 물음이다

이제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숙명적 사실이 드러난다. 인간은 범죄 후에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자신의 몸을 감추려 했고, 서로 탓을 미루는 변명을 하다가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 천사의 불 칼에 의해 쫓겨나는 여자의 모습은 왼편의 죄 짓기 이전 상태와 비교해볼 때 매우 대조적이다. 그림 왼쪽에서는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여자가 오른쪽에서는 검게 주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죄의식과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가리며 일그러진 얼굴에 잔뜩 움츠려든 자세를 취함으로써, 도피해 숨으려는 상태를 보인다.

여기에서 인간이 자신의 몸을 감추려 한다는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성경의 세계에서 부끄러움은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제 인간이 몸을 감추려는 것은 죄의식과 부끄러움이 생겼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가 생겨났다는 것을 뜻한다.

에덴동산은 공간적이고 지역적인 개념이 아닌 하나의 ‘상태’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구체적으로 그런 장소가 정말로 존재했는가를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에덴동산이란 태초에 창조된 세상 안에서 인간이 질서와 친교와 조화를 이루며 상생(相生)하였던 하나의 충만하고 온전한 ‘상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났다는 사실도 단순히 지역적인 이동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태초의 그 온전하고 충만한 상태와 친교의 관계가 깨어진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인간 스스로가 교만으로 말미암아 태초의 온전함을 파괴시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인간과 자연(땅)의 관계에 있어서도 역시 조화가 깨지고 갈등이 시작된다.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17-18절)

이처럼 인간의 죄악은 하늘(신)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 나아가 인간과 땅(자연) 사이의 조화와 질서의 아름다움을 깨뜨리고 갈등의 상태를 자아내게 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 묘사되는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갈등과 파괴적 상태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인간의 죄와 벌에 관한 창세기의 메시지는 오늘날 환경 파괴와 생태적 위기를 맞이한 우리에게도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오늘날의 생태 위기 안에서, “너 어디 있느냐?”(9절) 하는 질문 앞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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