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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양 교수의 인문학 산책 30] 미켈란젤로의 창조 이야기: 아름다운 동반 여정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교황청 국제신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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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2 09:00
  • 수정 2022.08.23 09:35
  • 기자명 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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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가 바티칸 박물관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다섯 번째 그림은 네 번째 그림에 이어 여전히 인간의 창조를 묘사한다. 구약 성경 창세기 1장에서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27절)고 짧게 언급한다. 

이에 비해, 2장에서는 더욱 자세한 묘사가 나타난다. 사람의 창조 이후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2,20)를 찾아주기 위해 여자의 창조가 이루어진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다음의 성경 대목을 잘 묘사한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21-23)
 

여기에서 이름을 부르는 데에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첫째, 이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처음으로 사람이 말을 하는 장면이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창조주의 창조 행위는 모두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제 말을 하고 있는 인간은, 말씀을 통해 온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를 닮은 존재임이 드러난다.

둘째, 성경의 세계에서 이름을 부른다는 것에는 단순한 호칭 행위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실재 자체를 제시하면서도 역동적인 힘으로 그 실재의 가장 깊은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름을 부름으로써 상대방의 실재 자체를 드러내는 동시에 밝혀진 그 실재의 의미를 자신의 삶 안으로 수용하는 행동을 뜻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름을 부름으로써 상대방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와 구분되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 또한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이름을 부름으로써 인격적으로 수용된 실재와 의미는 바로 삶의 ‘동반자’이다. 두 사람 모두가 상대방이 자신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전까지는 인간 창조가 아직 미완성인 채 남아 있었다. 그래서 창조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주겠다.”(창세 2,18)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은 창조주와의 관계성만이 아니라 다른 인간과의 관계성을 깨달을 때이다. 그러므로 이는 삶의 협력자로서 태어났으며 서로의 인격적인 보완을 통해 생명의 완성을 향해 성장해 나가야 할 인간의 본질적인 공동 운명, 즉 ‘동반자성’(partnership)을 제시하는 핵심적인 대목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갈빗대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성서 진술을 가부장적 지배 관점이나 남성 우월적 관점에서 해석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 설화적 표현은 두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최고의 일치성을 드러내면서, 바로 그것이 창조 과정의 본질임을 드러낸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

결국, 이 창조 설화는 인간이 애당초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며 상호 인격적 관계 안에서 사랑을 통해 서로 보완되어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할 존재임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남자의 창조가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여자의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식으로 두 번의 인간 창조 행위가 있었다고 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이는 각기 분리된 두 번의 창조 행위가 아니다. 동일한 창조가 두 관점으로 구분되어 각기 강조점을 달리해 제시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첫 번째 관점에서는 전체성 안에서의 인간 창조가 강조된다. 히브리어 명사 ‘아담’(adam)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이는 인간 창조에 대한 일반적이며 전체적인 성찰이다. 즉,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론적 차원을 반영하는 것이다.

두 번째 관점에서는 인간에 있어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이루어짐으로써 인간 간의 상호 인격적 관계성에 대한 성찰이 제시된다. 이는 같은 사람들 간의 인격적 관계 속에 살아야 하는 인간의 공동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구체적이며 실존적인 인간 삶의 사회적 차원에 해당한다.

그런데 잠든 사이에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성서적 진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우리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생명의 신비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신비로움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친교를 이루며 생명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공동체적 소명인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 묘사하는 두 사람의 결합은 인간 공동체의 형성을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표지이다. 가정 공동체는 곧 생명과 삶의 공동체이며 가장 기초적인 인간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차원의 의미를 넘어서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가치와 중요성을 드러낸다. 사실,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성장과 자기실현을 통해 비로소 참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고귀한 생명의 특징은 바로 ‘성장’이다. 씨앗을 뿌리면 거기에서 나무가 자라나고 꽃이 피며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 생명의 이치이다. 이렇듯 생명의 완성과 충만함을 향해 성장해나가는 여정에 있어 인간은 다른 인간을 동반자로 만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 명사 ‘샬롬’(shalom)은 어원적으로 ‘온전함’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우리 모두는 온전함과 충만함이 넘쳐나는 인간성의 실현, 그 참된 평화를 향해 공동체가 되어 함께 나아가야 할 소중한 동반자이며 협력자인 것이다. 지금 나는 인간 공동체의 이 아름다운 동반 여정에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기여하며 참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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