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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양 교수의 인문학 산책 28] 미켈란젤로의 창조 이야기: 시간과 공간

박준양 신부 (가톨릭대학교 교수, 교황청 국제신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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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16 09:00
  • 기자명 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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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

미켈란젤로가 그린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중앙 천장 벽화 중 세 번째 그림은 구약 성경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의 둘째 날과 셋째 날 이야기를 묘사한다. 첫째 날에 이루어진 빛의 창조가 시간적 질서의 창조를 의미한다면, 둘째 날부터는 공간적 질서의 창조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한 빈 공간에 물이 가득 찬 상태를 묘사한다.

고대 근동의 우주론적 세계관에서, 홍수처럼 다스려지지 않은 물이란 곧 혼란과 죽음의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물로 뒤덮여 있는 세상이란 공간적 무질서의 상태를 가리킨다. 이제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 하늘이 열림으로써, 그 무질서가 사라지고 질서정연한 공간적 분리가 이루어짐을 성경은 증언한다(창세 1,6-8 참조).

이는 시간적 차원의 창조에 이어서 공간적 차원의 창조가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하늘이 열린 다음에, 하늘 아래 있는 물들이 한곳으로 모아져 마침내 뭍이 드러나고 그래서 바다가 구분되기에 이른다(창세 1,9-10 참조). 하늘의 창조에 이어 땅과 바다의 창조가 또한 이루어진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 벽화에서는 밑으로 모여진 물, 즉 바다 바로 위의 왼쪽 아래에서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왼편 위쪽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점차 푸른색이 짙어져 하늘과 땅이 열리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이처럼 온 세상을 뒤덮고 있던 물이 한쪽으로 정리되는 것은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창조적 질서가 정립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을 이루는 창조주는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그 힘 있게 쭉 펼쳐진 열 손가락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는 창조된 세상에 질서를 부여해나가는 창조주의 권위와 능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창조주의 모습은 노인으로 묘사된다.

노인의 이미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부정적 측면의 고집과 완고함도 떠오를 수 있지만, 긍정적 측면의 너그러움과 관용, 지혜 등이 또한 떠오른다. 여기서는, 인생을 오래 산 이의 경험적 지혜와 관용으로 말미암은 권위가 특히 강조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미켈란젤로는 창조주를 노인의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이 세상에 창조 질서를 부여하는 창조주의 권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창조 행위가 ‘분리’ 혹은 ‘가르는’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창조주의 분리 행위는 분류(分類)를 가능케 하고, 거기에서 새로운 실재의 탄생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첫째 날에 이루어진 빛과 어둠의 ‘분리’는 결과적으로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간 질서가 탄생한다. 둘째 날에도 물과 물을 ‘가르는’ 행위로써 하늘이라는 새로운 실재가 생겨난다. 셋째 날에 이루어지는 땅의 창조 또한 바다의 물을 한쪽으로 모으는 ‘분리’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새로이 생겨난 땅 위에 식물체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역시 그 종류를 가르는 ‘분리’ 행위가 이루어진다. “땅은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하였다.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창세 1,12)

네 번째 날에는 하늘에 빛물체들이 생겨나 낮과 밤을 가르게 된다. 해와 달과 별들이 창조됨으로서 세상의 모든 이치와 절기와 주기가 자리 잡히게 된다(창세 1,14-19 참조). 다섯 번째 날에는 물에서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이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이 제 종류대로 창조된다(창세 1,20-21 참조). 여섯 번째 날에도 분류에 의한 창조가 이루어진다. 땅의 생물들이 제 종류대로 창조되어, 집짐승과 들짐승 및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들이 구분되기에 이른다(창세 1,24-25 참조).

언뜻 보기에, 분리시키고 종류를 가른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분리 행위는 파괴적 단절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참된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끔 하는 창조적 분류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본래의 모습으로 있게 될 때, 바로 그것이 창조 질서의 정립이며, 거기에서부터 창조적 힘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세상이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의 아름다움 속에 생겨난 것임을 의미한다. 이처럼 세상의 다양성 안에서 자신의 본 모습과 본래적 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창조적인 힘이 발휘된다. 하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는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가끔 유조선의 고장이나 충돌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원유 유출 사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석유는 얼마나 소중한 에너지 자원인가? 이를 구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하지만 본래 땅 속에서부터 추출되어 인간 삶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원유가 뜻하지 않게 바다 속에 뿌려져 바닷물과 섞이게 되면, 얼마나 큰 환경오염과 생태적 위기를 초래하게 되는가? 이 세상 모든 것이 창조 질서에 따라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있지 않을 때, 이는 생명의 힘이 아닌 파괴적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인간은 시간성과 공간성의 질서 안에 살아가는 역사적 존재이다. 시간성의 한계 안에서 살아가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끼고 잘 활용하며 살아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공간성의 한계 안에서 살아야 하기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잘 식별하며 살아야 한다. 시간과 공간의 선택이 곧 씨줄과 날줄처럼 내 인생의 전체 모습을 수놓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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