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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AZ 백신 맞고 급성 백혈병...“이상반응 신고 접수 거부...병원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환자를만나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남편 떠나보낸 아내의 절절한 사연 공개 
대학병원 교수, 인과성 부정하고 환자 돌려보내  
“의사의 양심을 속이는 짓인데 대안도 없어”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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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22 06:00
  • 수정 2022.08.26 19:05
  • 기자명 최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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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뉴스=최선재 기자] 그는 노래를 사랑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노래를 연습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였지만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갔다. 각진 검정 자켓과 새하얀 셔츠를 걸치고 무대에 섰다. 마이크를 잡은 손가락 중 약지는 살짝 들고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직접 작사한 1집 앨범 ‘간직한 사랑’을 내놓은 신인 가수였다.

최지호 씨 아내 이정남 씨가 남편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5년 전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었다. 아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술은 오로지 금요일 밤에만 마셨다. 수영장을 꾸준히 다녀 폐활량도 남달랐다. 숨을 참고 접영으로 50M를 헤엄쳤다. 대학 동문회에서 개최한 축구 경기에서 풀타임을 뛰었다. 또래는 고혈압과 당뇨에 시달렸지만 그의 몸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안방에는 흔한 약봉지 하나도 없었다. 

1986년,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다. 그토록 원하던 두 아들을 얻었다. 아내가 분유를 타주면 먹이고 트림을 하면 재웠다. 주방에서 음식을 하는 아내가 심부름을 시키면 미소 지으며 주저없이 다녀왔다. ‘스마일 예스맨’, 아내가 그를 부른 애칭이다. 스포츠를 워낙 좋아해 언제나 두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나갔다. 아들이 장성해도 아버지는 여전히 좋은 친구였다. 아내와 36년을 해로(偕老)하며 살았다.

2021년 9월 6일. 그는 가족을 두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내는 지금도 남편의 핸드폰 요금을 내고 있다. 남편을 못 잊어 유품을 정리하지 못했다. 그제도 남편이 오래 신었던 신발들을 정리했다. 남편의 영정사진을 보면 여전히 대화를 하는 것 같다. 남편 얼굴이 눈에 아른거린다. 수면제 없이 잠을 잘 수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최 씨가 축구를 즐기는 모습(좌)와 백혈병 투병 모습

지난 6월 AZ 백신 1차 접종을 마치고,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최지호 씨(64) 부부의 이야기다. 건강검진에서 ‘이상없음’ 판정을 받았고 기저질환이 없었는데도 대학 병원 측은 백신 이상반응 접수를 해주지 않았다. 본지가 18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인근에서 아내 이정남 씨(63)를 만나 그 원통한 사연을 들어봤다.

# 남편 최지호 씨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언제 맞았나

6월 18일, 1차로 AZ 백신을 맞았다. 저는 일주일을 먼저 맞았는데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아이를 출산할 때보다도 손 마디가 쑤셨다. 발이 많이 부어서 신발에 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일주일 넘게 고생하다가 겨우 좋아졌다. 

남편도 백신을 맞은 직후에는 괜찮았지만 일주일 후에 갑자기 ‘복숭아 뼈가 아프다“고 했다. 너무 이상했다. 바깥쪽 복숭아 뼈가 아니라 안쪽 복숭아 뼈가 부어 있었다. 마주 앉아 파스를 붙여줬는데도 좋아지지 않았다. “피곤하다”는 말도 가끔 했다. 

# 다른 증상은 없었나 

시간이 지난 다음에 남편 잇몸에서 피가 났다. 칫솔이 맞지 않는다고 서너번 칫솔을 바꿨다. 굉장히 건치고 충치도 하나도 없어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계속 피가 나서 제가 “치과에 좀 가보라”고 잔소리를 했다. 7월 중순쯤 치과에서 잇몸치료를 받고 약을 먹었더니 좋아졌지만 그래도 잇몸에서 계속 피가 났다. 

# 남편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다고 느껴진 계기가 궁금하다

남편에게 건강검진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저희 부부는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해왔는데 2년 전 마지막으로 건강검진을 했었다. 잇몸 출혈이 심했기 때문에 남편을 설득해서 8월 7일(토요일), 백신을 맞고 약 두달 가까이 지난 뒤 나란히 검진을 했다. 검진을 마쳤는데 의사 선생님이 “젊어보이시는데 혈소판 수치가 왜 이렇게 낮아요”라면서 피 검사를 다시 했다. 

그 다음주 수요일에 결과를 보러 가야하는데 갑자기 그 전날 연락이 왔다. 빨리 병원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소견서를 써주면서 대학병원 외래를 급하게 잡아줬다. 대학병원 전문의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일 수 있다. 가능성이 반반이지만 골수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걱정이 됐다. 이틀 뒤 아침 7시에 응급실에 와서 하루종일 기다리다가 골수 검사를 하고 항암제 투여를 위해 쇄골 쪽에 관을 삽입하고 퇴원했다. 

백신 접종 이전 부부의 행복한 사진. 

# 입원은 언제 했나

골수 검사  기간 동안 응급실에 꼬박 있었는데 다음날 오전에도 미리 피검사를 하러 내원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다음날 새벽 2시쯤에 쇄골 쪽에서 피가 멈추지 않아 저를 깨우지 않고 택시를 불러서 응급실에 다시 갔다. 그 때부터 병실이 없어 응급실에 계속 있었는데 병원 측이 “지혈이 됐기 때문에 응급실에 머문 기한이 차서 퇴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또 지혈이 안 되면 응급실에 와야 하고 남편이 위험할 수 있었다. 계속 응급실 원무과를 왔다갔다 하면서 병실을 달라고 하소연했다.  결국 남편은 하루에 59만원 짜리 1인실에 입원해서 23일부터 항암 치료를 받았다. 경제적 부담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은 일주일 간 항암치료를 받고 무균실로 갔다.

# 남편과 대화는 언제까지 이어졌나 

8월 29일부터 무균실에 들어가서 계속 있었다. 약 일주일 뒤인 9월 5일, 오후 1시 40분쯤 저랑 통화하고 5시에 큰아들과 통화해서 목소리를 들었다. 그날 오전에 문자도 했는데 남편은 “여보, 소화제를 좀 보내줘요”라고 했다. 원래 병원에서 오후 7시 반이면 항상 남편 상태에 대한 문자 메시지가 들어오는데 그날은 오지 않아 이상해서 병원에 전화하려고 핸드폰을 들었는데 때마침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 병원에서는 최지호 씨 상태를 어떻게 설명했나 

밤 8시경 남편이 횡설수설을 하고 계속 몸을 자꾸 움직인다며 “좀 와보셔야 겠다”고 연락이 왔다. 무균실에 저와 큰 아들이 가운을 입고 들어갔는데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어서 놀랐지만 곧 자가 호흡을 해서 위기를 넘겼다. 축 처진 손을 만져봤더니 따뜻하고 힘도 있었고 멀쩡했다. 

최지호 씨의 열창 모습

# 언제 사망하셨나 

저녁 12시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 다음날 오후 12시 20분 중환자실에서 패혈증이 와서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저희 가족은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장례를 치른 후에도 두 아들의 대화가 “어떻게 몇 시간만에 이런 일이 일어났지”라는 말들 뿐이었다. 저는 정신을 아예 놔버려서 멍하니 있었다. 슬픔이 계속 다가와서 견딜수가 없었다. 

#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백신 부작용 때문이라고 언제 처음 생각했나

건강검진을 마쳤을 때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아스트라자제네카 부작용 증상이 나랑 똑같네”라고 말했다. 잇몸출혈, 피로감 등 모든 증상이 당시 남편이 겪는 증상하고 같았다. 시댁 식구들이 워낙 건강했고 백혈병같은 가족력도 없었다. 백신을 맞지 않았으면 남편이 백혈병에 걸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제가 백신 접종 예약을 했다. 남편은 원래 예방 접종에 관심이 없었다. 작년에 독감 백신도 제가 권유해서 맞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다니던 병원에서, 백신을 먼저 접종하고 남편을 위해 코로나19 백신 접수를 했다. 백신을 맞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정말 후회가 된다. 

# 가장 억울한 점은 무엇인가

애초에 백신을 맞은 게 문제였지만 병원 측 과실도 크다. 무균실에서 패혈증이 온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다. 패혈증은 백혈구의 수가 줄어들면 면역력이 저하됐을 때 세균감염으로 오는 질환이다. 하지만 남편이 있는 곳은 무균실이었다. 담당 교수는 “장내 미생물 때문에 패혈증이 올 수 있다”고 했는데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른 병원에 비해 무균실 입구로 들어가는 구조도 허술했다. 지그재그식으로 문이 열리도록 돼있어야 하는데 통자였다. 환자 물품을 전달할 때 무균실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나오면 문이 통째로 열렸다. 다른 환자들이 복도에서 운동을 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럼 세균이 무균실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 아닌가. 어떻게 무균실에서 패혈증이 올 수 있는지 병원에 가서 따지고 싶다. 분명 의료사고가 맞는데 ’바위에 계란 던지기‘라고 생각해서 그러지 못하고 있다. 

# 병원이 이상반응 신고도 해주지 않았다는데 

남편의 삼우제를 지내고 아들과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백신 부작용 피해에 대해 의료비가 1000만원까지 지원된다는 소식을 듣고 치료비에 보탤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담당 교수는 “안타깝지만 지금 상태로는 인과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며 “다만, 2-3년 후에 기사화가 됐을 때는 자기가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처음 건강검진 했던 병원을 찾아갔는데 그곳에서도 최종적인 병원이 아니라 떼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최지호 씨의 1집 앨범 

# 평소 최지호 씨는 얼마나 건강했나

2년 전 건강검진 결과에서도 남편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몸무게를 평생 유지했고 허리를 잠깐 다치기 전까지 집에서 TV를 보면서 꾸준히 훌라우프 운동을 했다. 스키를 타러 해외를 다녔고 스킨 스쿠버도 할 정도로 건강 체질이었다. 주말에 등산도 다녔고 노래도 엄청 좋아해서 앨범을 내고 예식장에서 축가를 불러줄 정도로 즐겁게 살았다. 

(실제로 최지호씨 2019년 8월 24일 건강검진 자료를 살펴보면 고혈압, 당뇨병 질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체질량 지수도 정상 소견으로 비만도 아니었다. 신장, 간장 질환은 물론 요담백 검사 결과도 정상이었다. 심혈관계 나이는 55세로 실제보다 약 10년 가까이 젊었다. 그만큼 건강했다는 뜻이다)

# 그런데도 병원은 인과성이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병원이 자기 밥그릇를 챙기는 것이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 언론에서 기사화가 되면 보건소에 이상반응 접수를 해준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양심을 속이는 행위나 다름없다. 남편 앞 병실에 있던 환자는 교수가 백신이 림프종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인정해서 더욱 의심이 갔다.  의사들이 환자를 속일 수는 있어도 스스로의 양심을 저벼려서는 안 된다. 

#남편이 가장 그리운 때는 언제인가

하루종일 그립다. 남편 영정사진 보면 지금도 대화를 하자고 같이 마주앉은 기분이다. 그리움과 원통함 때문에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날을 꼴딱 새는 상황이다. 남편에게 매일같이 가서 제가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지금까지 편안하게 살게 해주고 애들도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계속 붙잡으면 좋은데를 못 간다는 얘기를 한다. 그래서 “이승의 짐은 내가 짊어질 테니 편안하게 가라”고 남편에게 말하고 있다. 그래도 일을 안하면 남편 얼굴이 클로즈업돼서 눈에 아른 거려 너무 힘들다. 저는 남편 물건을 하나도 안 버렸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서다. 얼마 전에도 제일 오랫동안 신고 다니는 신발을 다시 정리했다.

# 마지막으로, 정부에게 바라는 점은 

저뿐만 아니라 주위에 백신 부작용 환자들과 유족들이 많이 있다. 저희는 인과성을 무작정 인정해서 보상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미 떠난 사람이 보상해준다고 살아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억울한 마음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와서 백신 부작용을 책임진다고 했으면 인정할 부분은 인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반드시 대안을 마련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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